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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태으로 인한 중국정부의 상황 변화

혼자만의 잡담

by 곰탱이루인 2007. 9. 3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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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태
고승들 참여 여부, 중국 입장도 변수
그나마 남아있던 미얀마의 한국 기업들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까 걱정됩니다.” 국내 유일의 미얀마 전문인력 양성기관인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의 김성원(47) 교수는 28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얀마의 유혈 사태와 관련, 먼저 한숨부터 내쉬었다. 1996년 미얀마 군사정권이 문호를 잠시 개방했을 당시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이 이번 사태로 더욱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는 지난해말 현재 한국 목재업체 50여개, 봉제투자업체 48개사 등이 진출해 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제재를 강화할 경우 근근이 버티고 있던 한국 기업들은 모두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내다봤다. 김 교수는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미얀마는 18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쌀 수출국 세계 1위일 정도로 풍요로운 국가”라면서 “목재도 많고, 최상급인 ‘피전 블러드’ 루비의 원산지인데 한국 기업이 닦아놓은 기반이 완전히 사라지게 생겼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외국어대에서 미얀마 정치 연구로 정치학 석·박사를 받은 뒤 1992년 미얀마 국립 양곤외국어대 미얀마어과에서 공부한 국내의 ‘유학파 1호’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군사정권하의 미얀마 현지 분위기에 대해 “최고 명문대인 양곤대학교는 군사정권이 아예 외국인 입학을 금지했고, 그나마도 휴교와 개교를 거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상황인지 알 것”이라면서 “1997년 해빙기가 돌 당시에는 군정이 외국인 관광을 유치하기 위해 도시 개발에 나서는 등 활기찬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다시 침체상황으로 빠져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판단하기에는 이번 유혈 사태는 1988년 민주화 시위 당시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1988년에는 학생들이 주도하고, 승려들이 동참하는 형국이었다면 이번에는 젊은 승려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국민의 90%가 불교도인 미얀마 사회에서 스님들에 대한 존경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면서 “스님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포인트는 고승들의 참여 여부와 중국의 입장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미얀마 사회에서는 남성이라면 평생 2, 3차례 승려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젊은 스님보다는 고승들에 대한 존경심이 높은 만큼 이들의 참여는 시위대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김 교수는 “200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중국이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 군정을 계속 지지할 것인지도 변수”라면서 “앞으로 한 달이 고비”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미얀마에 대한 무지를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일단 군정 최고 지도자 ‘탄 슈웨’ 등 미얀마 고유명사의 한국어 표기가 현지어와 많이 다르다는 점부터 지적했다. 김 교수는 “버마어 문자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보다 더 앞선 인도 지방어였던 발리어에서 파생된 것”이라면서 “한국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미얀마의 인권 문제에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일견 미얀마 승려와 시민들의 민주 항쟁은 중국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어보입니다. 동남아의 소국 미얀마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지도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다지 높지 않은 편입니다. 그러나 미얀마 사태를 지켜보는 중국 지도부의 시각은 일반 중국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공산당 외사영도소조는 미얀마에 또다른 '색깔혁명'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고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정점으로 한 최고지도부는 미얀마 주재 중국대사관과 정보기관에 미얀마 정세를 주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중국이 미얀마 정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물론 미얀마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전략적 위치로 인해 오랫동안 경제.군사 원조를 계속해온 동맹국이기 때문입니다.

미얀마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미얀마 20여곳에서 해저유전, 가스전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미얀마 시트와항에서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에 이르는 육로 송유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중국은 미얀마 군사정권 출범 이후 14억달러 어치 이상의 무기를 제공한 최대 지원국입니다.

미얀마 군정이 외교.경제.군사적으로 가장 의존하고 있는 곳이 중국이고 중국도 미얀마에서 엄청난 국가 이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판단이 이번 미얀마 사태의 분수령이 될 수 있습니다.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으로선 지난 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처럼 미얀마 군정에 강제진압을 부추겨 주변지역의 정세불안과 국제적 비난을 자초하기는 어려운 형국입니다.  특히 중국은 군사력 확대로 인한 서방의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근래들어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소프트 파워'로 비춰지도록 하는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90년대부터 석유 및 지하자원의 확보를 위해 미얀마, 수단 같은 미국측이 지정한  '불량 국가'를 지원해왔습니다.  "중국은 어째서 군사 독재정권을 도와 나쁜 일을 하느냐"는 미얀마 시위대의 지적이 서방언론을 통해 전파되는 것이 중국 외교로선 가장 우려하는 대목입니다.

중국이 올해초 수단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에 참가키로 한 것도 국제사회에 책임있는 대국으로서 면모를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결국 공개적으로 미얀마 군정의 폭력 행사를 비난하지는 않으면서도 미국의 요청에 따라 지난주 이미 미얀마 군정에 자제를 권고하며 유혈진압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군사정권이 거센 시위사태를 지켜보다 못해 중국의 자제권고를 뿌리치고 결국 강제진압을 결정하게 되면 중국도 커다란 외교적 손실이 예상됩니다. 중국산 무기가 동원되면서 미얀마인과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질 것이고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 보다 중요한 문제는 미얀마의 민주항쟁이 독재정권을 전복하려는 '색깔 혁명'으로 중국에 전파될 가능성입니다. 외신에선 미얀마의 이번 항쟁을 가사(袈裟) 차림의 승려들이 주도하는 '사프란(saffron.선황색) 혁명'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1991년 8월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공산당 붕괴에 이어 국가해체에 이른 사태를 가장 피해야 할 상황으로 보고 있습니다. 
근래에도 장미혁명(그루지야), 오렌지혁명(우크라이나), 레몬혁명(키르기스스탄) 등 민주 시민혁명으로 정권이 붕괴된 것을 두고 중국은 이런 색깔혁명이 중국의 변방지구로 전파될까 '노이로제'에 가까운 두려움을 보여왔습니다.

따라서 국가이익과 국제여론의 사이에 놓여있는 중국으로선 이번 미얀마 사태가 북한 핵문제만큼이나 풀기 힘든 난제중의 난제가 되었다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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