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도시락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어요

혼자만의 잡담

by 곰탱이루인 2008. 9. 8. 10:01

본문

반응형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이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을 하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됩니다. 직접 자식들을 곁에 두고서 챙겨 먹일 수 없는 안타까움, 자식의 건강에 대한 걱정 혹은 방황하다 돌아온 것에 대한 용서, 기타 등등.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그리하여 무수한 상처가 생기고 또 딱지가 앉을 그여린 마음에 대한 염려가 복잡미묘하게 뒤엉켜 있는 단어가 바로 "밥은 먹고 다니냐?"로 함축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들은 소중한 남편, 자녀들을 위해 도시락을 쌉니다. 멀리 나갔다 돌아올 자식이 집에서 보내는 응원과 염려를 느낄 수 있도록 혹은 밥을 꼭꼭 씹으며 잠시라도 집 생각을 하고 웃을 수 있도록. 굶거나 다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신경써서 넣어준 영양가 많지만 싫어하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싫어하는 일과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길 기도하면서 어미니들은 오늘도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요즘은 학교는 급식이 대부분이고 직장인들은 회사 구내식당이나 식당에서 사 먹기에 도시락을 준비하는 어머니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직접 만들어 주지 못 하기에 급식 재료에 관해 안 좋은 뉴스가 나오면 자녀들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힘을 낼 수 있게 주문을 걸었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치히로의 엄마, 아빠는 진수성찬을 탐식하다가 돼지가 되었고 치히로는 오래 굶었습니다. 하쿠가 잔디밭에서 몰래 건네준 대나무 잎에 싼 주먹밥은 먹을 것이 아니라 사막 속의 물처럼 신선해 보였습니다. 치히로가 그걸 먹으며 엉엉 울 때면 보는 사람도 눈물이 같이 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치히로가 느끼고 있었을 외로움이, 그리고 그걸 치유해주는 주먹밥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쿠는 주문을 걸었다고 말했지만 주문 따위 걸 수 있을 리 없는 우리들도 도시락을 준비하고 건네주는 그 마음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도시락은 음식이면서 동시에 선물입니다. 그래서 먹는 사람과 싸 준 사람의 마음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하나의 도구가 됩니다.  영화 <우리 형>에서 형의 밥 밑에 깔려 있던 소시지 반찬을 보면 집에서 온종일 약한 형을 걱정할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그걸 보며 화내는 동생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그건 반찬의 가짓수나 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씀씀이의 문제이니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달빛 그림자>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먹은 너무 맛있는 돈까스를 다나베에게 전해주고 싶어 머나먼 거리를 충동적으로 달려가 창문에 매달리기까지 한 사건도 마찬가지로 어떤 선물이나 긴 고백보다 마음을 절절하게 전달했을 것입니다.

캐릭터 도시락으로 유명하신 담덕공자님의 작품입니다. 출처는 http://www.ddgongza.com/ 입니다


그렇기에 도시락에 대한 기억은 곧바로 그 때 함께 하던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추억이 됩니다. 급식이 없던 시절에는 고3 자녀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서 자녀들을 위해 도시락을 두세 개씩 싸던 엄마의 고단함과 배려도, 혹은 밤새 서툰 솜씨로 준비해서 남자친구의 군부대로 면회를 가던 길도, 쓸쓸하게 혼자 도시락을 먹어야 하던 외로움도, 함께 나누어 먹던 친구들도, 음식보다는 장소, 장소보다는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고스란히 남습니다.

바로 지금의 내게 가장 소중한 그 사람에게  도시락을 싸 주는 것이 어떨까요? 자녀들이 급식을 먹으므로 혹은 남편은 구내식당을 이용하기에 고작 한 끼에 불과할 도시락에 불과하지만  항상 지켜보고 있으며 염려하고 응원하고 있노라고. 어느 재료 하나 소홀히 함부로 고른 것이 없다고. 그러니 내가 곁에 있지 못한 그 시간에도 안심하시라, 힘내시라, 나를 잊지 마시라, 말없이 말하기 위해 오늘 도시락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인기 포스팅- 드라마를 보면 생기는 습관 No. 5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