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비해서 이공계의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숫자가 현격히 줄었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큰 원인을 뽑으라면 단연코 현행 입시제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정치적 목표아래 시행된 대학입시 본고사 폐지 이후 학생들은 수능이라는 어설픈 시험을 통해서 또한 학교 내신이라는 것을 통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우리의 입시제도입니다.
학교 내신도 과목별로 좋은 성적받으려면 전과목에 적지 않은 신경을 써야하며 수능시험 또한 그렇습니다. 두가지다 문제가 평범하고 옅은 공부만으로도 해결할 수있는 문제들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기초과목, 국어, 그리고 암기과목인 사회등에 대한 공부를 깊이 있게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학생들의 취향에 따라 약간의 선호과목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꿈을 가질 만큼 깊이 있는 맛을 느껴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막연히 미래가 보장된다는 의대, 한의대, 법대등 그런 곳으로만 몰리게 되어있습니다. 현행 입시제도는 학생들이 공부를 옅게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꿈을 개발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물리문제에 도전해보고 싶은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과목에 대한 깨달음이 있을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런 깨달음 없이 고등학교를 마치는 학생들은 그저 남들이 좋다하는 인기학과를 가는 수 밖에는 없고 또한 부모들 역시 자식들이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거나 취업에 불리한 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전에 친구들이랑 나눈(친구나 저나 모두 인문대 학생, 즉 국문학 전공이었습니다.) 이야기 중에서 이공계를 기피한다고는 하지만 이공계 학생들은 졸업후에 기업체에서 구인공고를 할때 왠만큼 들어갈 수 있지만 인문대 중에서도 법대나 경영대, 사범대와 같은 대학을 제외하고는 인문대 학생들은 구인 공고에 인문대는 나열되어 있지 않다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아래의 숨겨진 글을 인문계 위기에 관한 글을 올렸습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에는 ‘문화콘텐츠학과’라는 학과가 있다. 2004년 국제문화대학 인문학부 안에 개설된 이 학과는 아직 첫 졸업생도 배출하기 전이지만 벌써부터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문화콘텐츠(30명)와 국어국문학, 문화인류학 등 3개의 전공이 포함된 인문학부 정원은 120명. ‘모집정원의 최대 120%까지 학생을 뽑을 수 있다’는 교칙에 따라 문화콘텐츠학과는 설립 첫해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36명씩을 뽑아왔다. 희망자가 폭주했기 때문이다. 외관상 공통과정을 이수한 후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게 돼 있지만 해마다 이 학과는 학부 전체 1등에서 36등까지를 싹쓸이했다.
한양대는 내년 문화콘텐츠학과를 학부에서 독립시킬 계획이다. 모집 정원도 40명으로 늘어난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문화콘텐츠 전공이 인문학부에서 빠지면 좋은 학생을 더 이상 끌어올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화콘텐츠는 영화·게임·애니메이션·음반·캐릭터·방송·전자책(e-book)과 같은 영상미디어와 뉴미디어를 기반으로 저장, 유통, 향유되는 문화예술의 내용물을 일컫는 말이다. 여러 분야가 한데 얽힌 대표적인 ‘컨버전스(convergence)’ 학문이다. 그런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설립을 주도한 박상천(52) 교수와 박기수(42) 교수는 국문학자다. 박상천 교수는 시인 출신이고 박기수 교수 역시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김기림 시인론’을 택했던 문학비평 전공자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은 문화콘텐츠학과는 국문학과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총 4명으로 구성된 교수진 중 두 박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각각 신문방송학과와 경영학과 출신이다. 개설 과목 대부분이 ‘만화대본 워크샵’ ‘게임 기획과 시나리오’ ‘문화이벤트 컨설팅’ 등 철저하게 실습 위주로 꾸려진다는 점도 독특하다. 재학생 전원은 3학년 1학기부터 3학기 동안 관련 업체에 파견, 인턴으로 근무할 기회도 얻는다. 업체 알선과 파견 비용 부담은 모두 학교 몫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6번 코너에는 컴퓨터·전기·전자 관련 서적이 모여 있다. 한혜원(31) 계원조형예술대 교양학부 교수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책 ‘디지털 스토리텔링’(황금가지)을 찾으려면 이곳으로 가야 한다. 디지털 스토리텔링(digital storytelling)이란 디지털 기술을 매체 환경이나 표현 수단으로 수용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를 지칭하는 용어다. ‘윈도우 웹 서버 보안’ ‘현대암호학’ 등과 나란히 꽂혀 있는 이 책 역시 한 교수와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를 비롯한 국문학자들이 엮은 것이다.
한혜원 교수는 이화여대 국문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 역시 현대문학을 전공하다 몇 년 전부터 게임 스토리텔링을 깊이 있게 연구해오고 있다. 그는 카이스트(KAIST) 대우교수를 거쳐 올 초 계원조형예술대 전임 강사로 정식 임용됐다. 아직 박사논문이 진행 중이고 젊은 나이임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조건이다.
학과 명칭 바꾸는 학교도 늘어 흔히 ‘국문과’로 통칭되는 대학 국어국문학과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나 한혜원 교수의 경우와 같이 국문학 본류에서 이탈한 후 전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사례가 그 첫 번째 현상. 가톨릭대에서는 국어국문학과 재학생이 디지털문화학부 수업을 연계전공 형태로 수강할 수 있다. 서울대 국문학 박사 출신인 송성욱 교수가 시스템을 만들었다. 인하대(인천)의 경우 한 캠퍼스에 국어국문학과와 문화콘텐츠학과가 공존하고 있다. 서원대(충북 청주) 김외곤 교수는 국문학자이지만 국어국문학과 소속이 아니라 광고홍보영상학부 내 문화콘텐츠 전공 지도교수다. 강원대에서도 작년부터 국어국문학과와 별개로 문화예술대학 소속 스토리텔링학과가 개설, 운영되고 있다.
학부는 그대로 두되, 대학원 과정에서 비슷한 실험을 감행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디지털미디어학부를 만들어 국문학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가 대표적인 예.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을 본떠 만든 카이스트(KAIST)의 CT(Cultural Technology)대학원도 비슷한 경우다. 매년 10억원씩 총 100억원의 국고 지원이 확정된 CT대학원의 경우, 최근 ‘불멸의 이순신’의 소설가 김탁환 교수와 ‘경성기담’의 저자 전봉관 교수 등 서울대 국문학 박사 출신 교수진을 대거 영입해 화제를 불러모았다.
기존 학과의 성격을 유지하되 타이틀, 즉 학과 명칭을 바꾸는 학교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호서대학교(충남 아산). 이 학교에서 국어국문학 전공은 한국어문화학부에 포함돼 있다. 독특한 것은 한국어문화학부로 입학한 학생 전원은 국어국문학 이외에 또 하나의 전공인 문화콘텐츠창작을 복수전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졸업과 동시에 두 개의 졸업장을 획득할 수 있으며 국어국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문화콘텐츠 분야의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학생 모집에 나서고 있다. 장안대(경기 화성)의 경우 아예 국어국문학과 자체가 없다. 대신 ‘디지털문예창작과’가 있다. 소속 교수 3명은 모두 국문학 박사 출신. 이 학교 역시 학습목표에 스토리텔링이나 멀티미디어 저작 도구, 디지털 콘텐츠 등의 용어가 빠지지 않는다.
최근 신설되는 대학이나 전문대학의 경우 아예 출발 단계에서부터 국문학과를 만들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4년 설립된 동양대(경북 영주)에는 국어국문학과가 없다. ‘교양학부’라는 게 있어 국문학을 전공한 교수진이 약간 명 배치될 뿐이다. 1993년 설립된 남서울대(충남 천안) 역시 인문계열에 국어국문학과가 포함돼 있지 않다. 대신 교양과정부에 ‘국어 한문 전공’ 교수가 3명 있다. 성결대(경기 안양)의 경우 국문학과와 사학과를 합쳐서 ‘한국학부’라는 이름으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학과의 존재와는 별도로 대학 1년생의 대표적 필수 교양과목이었던 ‘국어와 작문’ 역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국어와 작문’을 ‘필수’가 아닌 ‘옵션’으로 돌린 최초의 대학은 가톨릭대. 교수가 되기 전 국문학 강사들의 최고 일자리였던 ‘국어와 작문’이 사라지면서 해당 강사들은 졸지에 갈 곳이 없어졌다. 몇 년째 2~3개 대학에서 ‘국어와 작문’을 강의하던 한 강사는 지난 학기 “국어와 작문 대신 디지털 스토리텔링 강의를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국어국문학과의 전통이 오랜 서울 소재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전체 신입생에게 비교적 엄격하게 ‘국어와 작문’ 수강을 요구하는 학교는 한성대와 한국방송통신대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 국문과 강사들의 얘기다.
“국어 그거 애들 작문이나 하는 과목 아닙니까?” 최근 국어국문학과를 둘러싼 일련의 변화는 사실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다. ‘학생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지방대 교수들을 만나면 ‘이제 천안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학생 모집이 안 되는 지역권 범위가 그렇다는 거지요. 그만큼 수도권 이내가 아니면 학과를 불문하고 신입생을 모으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국어국문학과는 어떻겠습니까.” 박기수 교수는 “교수들 중에는 수년 내 수원까지 그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내놓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국어국문학과의 변신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대학들이 대개 지방대, 그 중에서도 (정부에 대한 재정 의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립대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이라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입장은 아니다. 서울대 국문학과 출신인 40대 중반의 한 교수는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서울대 인문대는 연세대 의대보다도 커트라인이 높았다. 그런데 요즘은 전국 모든 의대 커트라인보다도 훨씬 낮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커트라인이 낮아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과 정원이 줄어드는 사태까지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문학의 변신에 관해서는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성교(75)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지금과 비슷한 논쟁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성신여대 인문대학장을 했어요. 그때 교양 과정에서 국어를 없애는 문제로 한창 논쟁이 벌어졌지요. 당시 내 옆에 화학과 모 교수가 앉아 있었는데 ‘학장님, 국어 그거 애들 작문이나 하는 과목 아닙니까?’ 그래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목이 쉴 정도로 국어의 당위성을 주장해 결국 관철시켰습니다. ”
김선학(63)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매 학기 첫 번째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쪽지를 나눠주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한자로 써 보게 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학생이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제대로 쓰지만 ‘삼국유사’는 ‘三國有史’로 쓴다고 한다. 그는 “한글로 쓰면 되는데 왜 굳이 한자로 써야 하느냐”는 학생들의 볼멘소리를 들으며 요즘 국어국문학과의 위기를 돌아본다고 했다. “남겨진 여러 가지 일이라는 유사(遺事)의 뜻을 알아야 삼국유사의 야사적 특성과 저자 일연의 집필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요. 국어국문학의 존재도 한자 같은 것 아닐까요? 당장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없애버리겠다는 공리적 발상은 위험합니다. ”
조선 중기 고전문학을 전공한 정소연(31)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서울대 국문학 박사)는 조선시대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이른바 ‘문이재도론(文以載道論)’에 빗대 요즘 상황을 해석했다. “문이재도론에서는 문(文)은 도(道)를 담는 그릇이라고 봤습니다.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은 내용물(道)이고 그걸 담는 그릇(文)은 비본질이라는 뜻이에요. 이 논리에 따르면 정통 국문학은 전자, 최근 각광 받는 문화 콘텐츠나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후자가 아닐까요? 결국 비슷한 논란이 시대가 바뀌면서 계속 되풀이되는 거예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 바뀔 뿐, 그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평행사관’이죠.”
‘국문학이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쪽의 반론도 팽팽하다. 이들 주장의 가장 큰 주제는 과거 수십 년간 이어져온 국어국문학 고유 영역의 축소다. 국어 교사는 국어교육학과에, 언론 분야는 신문방송학과(언론정보학과)에, 창작 영역은 문예창작과에 빼앗겨 ‘국어국문학’이라는 타이틀로 진출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갈수록 좁아진다는 논리다.
특정 시대와 인물, 장르에 한정된 전공을 가진 몇 명의 교수진이 국어국문학의 방대한 커리큘럼을 깊이 있게 소화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정해진 시간에 너무 많은 내용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졸업하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직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부생의 급격한 감소 역시 기존 국어국문학과로서는 ‘이상 신호’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국문학과 교수는 “옛날엔 1~2학년 때부터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학생이 나오곤 했는데 요즘 국문과 우수 졸업생들은 국문과 대학원이 아닌 통역대학원에 가겠다고 한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며 “우수한 학생이 대학원으로 안 오는 것은 해당 학과로서는 굉장히 위험한 신호”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문학의 변신을 주장하는 학자들조차도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아류 국문학과’의 등장은 달가워하지 않는 입장이다. “디지털 콘텐츠 부문은 역사가 오래지 않아 전문가층이 굉장히 얇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40대 이후는 없다고 봐야 해요. 나머지는 이름만 바꿔 활동하는 거죠.”(한혜원 교수) “시중에 나와 있는 문화 콘텐츠, 디지털 스토리텔링 관련 책의 90%는 가짜예요. 제대로 된 분석 없이 껍데기만 바꾼 거죠. 이쪽 분야는 철저하게 실용성, 현장성 위주로 움직이기 때문에 업계 쪽 전문가가 상당히 많습니다. 오히려 학교 쪽에는 제대로 된 전문가 집단이 적은 편이에요.”(박기수 교수) 특히 박 교수는 “문화 콘텐츠 분야는 국문학뿐 아니라 사학, 철학 등 모든 인문학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분야 간 협업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각 전공들이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식의 지적 우월주의에 빠져 있어 제대로 된 연구 성과가 나오기 힘든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국문학의 경쟁력은 이야기… 계속 발전시켜야” 안경환 비아이그룹 제작본부장은 9월 초 종영된 MBC 애니메이션 ‘먹티와 잼잼’을 기획, 제작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업계에서 오랫동안 실무 경력을 쌓은 그 역시 서울산업대와 세종대에서 디지털 콘텐츠 관련 교양 강의를 진행한다. 그의 수업을 듣는 수강자의 40%는 국문학 전공자다. “사실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국문학이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은 일부분이에요. 물론 매체 환경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콘텐츠 성격도 달라져야죠. 그렇지만 콘텐츠 탑재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원천 소스를 개발하는 것이고, 그게 국문학의 영역이에요. 농사로 따지자면 괭이나 호미를 만드는 대장장이 같은 역할이랄까요?” 안 본부장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한국의 문화원형사업에서 ‘한국의 호랑이’ 편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설화나 전설, 민담 속의 호랑이 캐릭터와 관련 이야기를 찾아내 그걸 애니메이션, 삽화 등 다양한 콘텐츠로 변형시키는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작업의 시작은 늘 인문학자들이에요. 그 분들이 없었다면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일이죠.”
설기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기반조성본부장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미국 할리우드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중 ‘드라마티카(Dramatica)’라는 게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과 대강의 이야기 줄거리를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해당 캐릭터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플롯을 체계화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지요. 그렇지만 그게 창작의 끝은 절대 아닙니다. 기본 도구일 뿐이에요.” 그는 외국에 비해 빈곤한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탄탄하지 못한 인문학 교육에 있다고 믿고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디지털’은 언젠가 더 좋은 기술이 나타나면 변하겠죠. ‘텔링’ 역시 진행형이므로 변할 수밖에 없고요. 결국 변하지 않는 본질은 ‘스토리’, 곧 이야기이고 이걸 인문학에서 해주어야 합니다. ”
전공의 중심은 잡되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최혜실(45)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요한(계시자)’ 같은 존재로 통한다. 그는 1999년 ‘디지털 시대의 문화예술’이라는 책에서 ‘문화기술(CT)’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문화관광부 주도로 ‘문화 콘텐츠’라는 용어가 만들어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문광부 산하기구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문화원형사업의 기본 틀을 만들어준 것도 최 교수였다. 그는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있던 2001년 원광연 당시 카이스트 전자전산학과 교수와 함께 세계적으로 디지털 스토리텔링 관련 과목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 관련 교재를 만들어 전국 대학에 배포하며 ‘디지털 스토리텔링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랬던 그가 2004년 12년간의 카이스트 생활을 접고 경희대로 돌아왔다. 타이틀은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다.
“스토리텔링의 베이스는 인문학이에요. 제가 처음 카이스트에서 스토리텔링을 가르친다고 했을 때 여기저기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죠. 그렇지만 이공계 베이스에서 국문학은 수단이고 착취의 대상일 뿐이에요.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죠. 스토리텔링의 자양분은 인문학에서 발전해 뿜어져 나와야 하고, 그러려면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인문학자가 대접을 받아야 해요.”
국문과로 돌아온 지 3년째, 그는 여전히 국문과에 불만이 많다. “요즘 같은 하이브리드 시대에 자기 학과의 정체성에 집착한다는 건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일이에요. 전공의 중심은 잡되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어야죠. 내가 우리 과에서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고 하면 아직도 어떤 교수는 ‘이런 건 언론정보학과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일종의 순결주의죠. 계속 이렇게 가면 국문과의 영역은 자꾸 축소될 수밖에 없어요.”
그는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국어국문학과 내 한 분야로 정착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어떤 이는 기술에 약한 국문학 전공자가 어떻게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하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논리로 따지면 이공계 전공자도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어요. 양자가 결합해야죠. 지금은 디지털 기술이 워낙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기술 쪽에 더 방점이 찍혀 있지만 조만간 달라질 겁니다. 영화를 발명한 건 에디슨이지만 훌륭한 영화를 만든 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잖아요.”
최혜실 교수는 1997년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에서 1년간 교환교수로 있었다. “그때 제일 놀랐던 게 하버드대 영어영문학과의 규모였어요. 우리로 치면 국어국문학과에 해당하는 ‘department of literature’와 ‘department of linguistics’가 있긴 한데 제일 작고 볼품없더라고요. 캘리포니아나 버클리 쪽 대학에서 영문학은 철저하게 미디어와 결합해 영화 시나리오 작법이나 문화학(culture studies)으로 흡수됐죠. 나라 뺏기고 언어 뺏긴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국어국문학이 각별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도 머지않아 미국식으로 갈 겁니다. ” 그는 “자신이 대학에서 배운 전공으로 평생 먹고살 수 있어야 그 학문이 가치로운 것”이라며 “인문학 분야의 연구 결과를 정량화해 정당하게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불필요한 순결주의를 버리면 국문학에도 미래는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재미있는 뉴스 두 가지를 들려주었다. “서울대 인문사회 계열에서 문화 콘텐츠 취업 박람회를 연대요. 서울대 철학과에서는 인문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만들었다고 하고요. 놀라운 변화 아닌가요?” 그는 “지금 완고해 보이는 몇몇 대학 인문학과들도 조만간 바뀔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미 징후가 나타나고 있잖아요, ‘(더 이상) 못 살겠는 과’ 중심으로. 자기 학과가 폐과될 지경에 이르면 누구나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어요.”
이공계의 기피 문제는 단순히 이공계를 진학하는 학생 수의 줄어든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인문계의 진정한 위기는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것과 취업을 우선시하면서 기존의 학문 영역이 새로운 영역으로 변화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국문학과가 없는 종합대도 있는가 하면 국문학과를 문화콘텐츠 학과로 바뀌거나 국문학과 한국학 그리고 문예창작학과를 합쳐서 한국학부로 통폐합시키는 대학도 있습니다.
예전에 얼핏 듣기로는 예전의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쩔쩔맬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고 하는데(문제만 잘 푸는 실력이 아니라 지식이 많다는 의미에서) 요즘은 그런 학생들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모님의 성함도 한자로 못 쓰거나 과제를 위해 논문을 읽을 경우 논문에 있는 한자를 못 읽어서 토를 달아달라고 선배를 찾아다니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 10년전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아마 제가 다니던 시절보다 나아졌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인문계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몇년전부터 인문학 교수들이 대안을 만들려고 했으나 뚜렷한 대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는 당근과 채찍을 쓰는 방식처럼 경쟁을 통해서 지원코자 한다는데 솔직히 인문학은 이공계의 학문들처럼 실험을 통해 바로 논문을 쓸 정도로 논문을 작성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교수님도 한편의 논문을 쓰기 위해 서너달을 준비하고 자료도 방대할 정도로 모아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정부는 지금 이공계 기피의 문제만 집중을 하지 말고 더 심한 위기일 수 있는 인문학의 모습도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문학이 사라진다면 다른 인문계 단과대학 뿐만 아니라 이공계에도 그 여파를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공계의 위기는 정부의 BK21과 같은 지원 정책과 같은 걸로 이미 조금씩 해결방안이 수립된지 몇 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아는 분도 학부시절부터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BK21에 선정된 학교에서 다녔기에 얼마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닐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그 결과가 어떤지 조금씩 보여줘야 하겠지만 인문학은 BK21에 해당되는 그런 지원책조차 없어서 해결방안이 잘 안보일 지경입니다.
<BK21>란 무엇인가?
BK21사업은 "세계적수준의 대학원육성사업","지역대학육성사업","특화분야,핵심분야,신규분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 서울대,포항공대등에서 BK21에 선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세계적수준의 대학원육성사업'에서 과학기술분야의 대학원으로 선정되었다는것을 일컫는 것이죠.
'세계적수준의 대학원육성사업'에서 기계분야 대학원으로 선정된곳은 "서울대,과기원,광주과기원,포항공대,한양대,경북대" 이상 6개 대학입니다. 대학별로 매년 45억정도씩 지원이 됩니다.
'지역대학육성사업'은 비수도권지역대학의 학부를 대상으로 선정이 되었는데, 기계분야에서 선정된 곳은 "부경대(동아대, 동의대, 한국해양대),영남대(계명대, 대구효성가톨릭대, 금오공대, 안동대, 상주대),전남대(목포대, 순천대, 조선대),경상대(인제대),창원대(경남대, 울산대)"입니다. [앞은 주관대학, 괄호안은 참여대학] 지원금액은 대학별로 '세계적수준의대학원육성사업'의 1/3 ~ 1/6정도 수준입니다.
'핵심분야나 신규분야'는 대학원이나 학부를 선정하는것이 아니라, 해당분야에 선정되지 못한 대학들 위주로 개별교수팀별로 선발하는 것입니다. '특화분야'는 세계적수준의대학원육성사업 이외에 전문인력양성을 위해 선정되는 것으로, 지원금액은 사업단별로 '세계적수준의 대학원육성사업'의 1/3 ~ 1/7정도 수준입니다. 예를 들면 기계관련으로는 국민대 자동차정보기술사업단을 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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