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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 운동 성공 가능할까?

혼자만의 잡담

by 곰탱이루인 2007. 9. 28.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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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이 19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미얀마(옛 버마)가 다시 ‘민주화의 기로’에 섰다. 철권 통치를 하고 있는 군정의 강경진압 경고에 이은 통행금지령에도 불구, 반정부·민주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이다.

10만명까지 불어난 전국적 시위가 26일 경찰의 최류탄 발사에도 불구하고 9일째 이어지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속보를 전했다. 만일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미얀마 군정을 압박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왜 거리로 나왔나=시위가 시작된 것은 지난달 19일. 군정이 하룻밤 사이 급작스럽게 디젤 값을 2배, 천연가스 값을 4배나 인상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장 학교, 직장에 갈 버스비마저 모자라게 된 시민들은 분노했고, 거리로 나섰다.
군정이 시위 주도 혐의로 민주화 인사들을 체포하면서 잠잠해지는 듯하던 시위는 지난주 승려들의 평화시위 촉구로 다시 불붙었다. 지난 5일 미얀마 북부 파코크에서 승려들의 평화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데 대한 사과 요구를 군정이 거부하자, 승려들이 항의시위를 벌인 것이다. 여기에 일반시민은 물론 인기 코미디언인 카르가나르, 배우 콰우 뚜와 시인 아웅웨이 등 유명인까지 참여하며 시위는 힘을 얻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서 시작된 시위는 확산 과정에서 무능력한 군정에 대한 반대, 민주화시위로 번졌다. 한 승려는 AP통신을 통해 “단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시민들이 미래를 결정한 권리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라며 “더이상 미얀마인들은 군정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8888의 재연인가=경제 파탄 등 민생 불안이 사회를 뒤흔드는 시점에 승려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며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80년 광주민중항쟁’에 비견되는 1988년 ‘8888 버마 민주항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10만여명이 참여한 이번 시위는 3000여명이 희생된 8888 민주화시위 이후 19년만에 이뤄진 최대 규모의 시위다.


여기에 당시처럼 승려들이 시위의 구심점이 되어 적극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민의 90%가 불교도인 독실한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는 승려들의 행동은 국민들에게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보통 정치색을 띠지 않는 미얀마의 승려들은 영국의 식민지배 반대와 ‘8888 민주항쟁’ 등 중요한 정치적 변환점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불교계가 군정의 기부금마저 거부하며 시위를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태는 어디로=들불처럼 일고 있는 반정부시위가 미얀마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간 나름대로 자제 움직임을 보이던 군정은 결국 야간 통행금지령 발령과 무장 군병력 투입 등 강경대응 카드를 꺼내들었다. 양곤에서는 “군정이 시민을 향해 살포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으며 시위대 대다수의 체포를 위해 감옥을 비우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군정은 이 같은 압박 카드에 굴복한 시위대의 자진 해산을 기대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반정부시위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다. 26일 승려와 시민 수백여명이 양곤 쉐다곤 파고다에 모여들자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방패, 경찰봉을 휘둘러 수명이 부상하는 유혈사태마저 발생했지만 거리 행진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물론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군정의 강경일변도 태도는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수십년간 군부가 철권통치를 해온 미얀마에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부가 군 병력을 투입, 시위 가담자를 체포하는 등 본격적인 제재에 나서면서 무력충돌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년 전 민주화 시위와 유혈 진압의 뼈아픈 역사가 재연되는 양상이다
.<출처: 경향신문 박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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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 시위 진압 시도

미얀마 군사정부는 26일 새벽 0시를 기해 미얀마의 옛 수도인 과 제 2도시인 만달레이에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령했고 5명 이상 모이는 집회도 금지시켰다. 군정은 민주화 시위의 중심지인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를 비롯해 수도원 주변 등에 무장 군인을 배치, 검문 검색도 강화하고 있다. 쉐다곤 파고다는 1988년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의 중심지였으며 최근에도 승려들이 이끄는 반정부 가두행진의 출발지 역할을 해왔다.

이와 함께 이날 새벽 체제 비판적인 독설과 개그로 유명한 코미디언인 자가나와 친 민주주의파 정치인 윈 나잉이 양곤시 자택에서 체포됐다고 서방 외교관들이 전했다. 민주화 운동으로 몇 차례 옥살이를 한 적이 있는 이들은 승려들의 집회에 음식과 물품 등을 지원하는 위원회를 이끌어왔다. 서방의 한 외교관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마지막 경고 차원인 것 같다”며 “앞으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며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승려들이 이끄는 10만 시위대
미얀마 군정이 1988년 이후 처음으로 양곤 시내에 무장 군인들을 투입한 것은 그만큼 반정부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반정부 시위는 지난달 15일 정부가 유가 보조금을 예고 없이 철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로 인해 유가가 5배 이상 폭등하자 시민과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정부가 시위자 체포 등 단속에 나서면서 잦아들었던 시위는 그러나 이달 중순 승려들이 본격 가담하면서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18일부터 시작된 승려들의 비폭력 가두행진이 매일 계속돼 24일에는 양곤 시내에 모인 시위대가 10만명을 넘어, ‘88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재연됐다. 이날 군사정부가 가두시위를 자제하지 않으면 강제 진입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25일에도 2만여명의 승려와 시민이 모였다.

이번에는 민주화될까
현 상황이 1988년과 흡사해 유혈 사태의 우려도 높지만, 국제 정세가 당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평화적 사태 해결 가능성도 없지 않다. 1988년 8월 8일 시작됐다고 해서 ‘8888’ 운동으로 불리는 당시 민주화 운동도 군부의 갑작스런 경제 조치가 발단이 됐다.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해 26년 동안 통치해왔던 네윈 장군이 45와 90차트짜리 지폐만 남겨놓고 나머지 화폐는 사용을 금지해, 하루아침에 국민들이 보유한 총 화폐의 75%가 휴지조각이 됐던 것. 9로 나눌 수 있는 숫자만 행운의 수라는 어처구니 없는 미신 때문이었다.

학생들에 의해 촉발된 시위는 승려들이 가담하면서 확산돼 결국 네윈 장군이 물러났지만, 그 해 9월 군부 세력이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민주화 열기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군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유혈 진압해 수 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권력을 장악한 탄쉐 장군이 국가평화발전회의 의장을 맡아 19년동안 미얀마를 통치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국제 정세는 냉전 시대였던 당시와는 엄연히 다르다. 세계 각국이 미얀마 군정을 비난하는 와중에서 군정의 마지막 의지처인 중국도 사태 확산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마크 컨닝 미얀마 주재 영국 대사는 “세계의 눈이 집중된 상황에서 군부가 무력을 사용한다면 미얀마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한국일보 송창희 기자>

미얀마(구 버마)는 우리의 1980년대 중반 민주화를 요구하던 87년경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6월항쟁과 일면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과 비슷한 면을 보이는 것은 군부의 독재(전두환 정권 태생이 군부의 출현이었으므로)와 국민들의 정치 체제의 변화 요구를 무시(한국의 6월 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호헌조치와 군부 정치를 벗어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참여로 인해)한 것이 어쩜 우리네의 80년대 중반 모습과 같습니다.

그 시작이 사소한 것이었지만(미얀마는 유류비 인상으로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오랜 기간 아웅산 수지여사를 가택연금하는 등 군부의 지나친 권력욕으로 인한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과 계엄령을 이용하여 군을 시위 진압에 투여한 것이 어쩌면 우리네와 비슷한 전철을 따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군의 특성상 상부의 명령에는 따라야 하지만 그 명령이 이번과 같이 좋지 않는 결과(시위 군중이나 일본인 기자 사망 등)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면 거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에 개봉된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는 모든 과정이 서술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직접 겪은 80년 광주에서도 이와 같은 군의 발포로 인한 군중들의 사망이 많았습니다. 저도 병역을 이행해서 군의 특수성을 알고 있지만 국가가 지켜야 할 국민을 군대로 인해 총격을 받고 사망(살해)하는 국민이 있다면 그 군대는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미얀마 민주화 운동사태로 인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 되길 바라며 또한 국제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관심을 두고 이번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듯 합니다. 다만 당사자인 미얀마 군부는 몇 년동안  비슷한 사태를 겪었기에 이번 사태도 별일 아닌 듯 지켜보는 거 같기도 합니다.

ps. 오늘(29일)아침 7시 뉴스를 보니깐 미얀마 군의 총기 사용으로 인해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하는군요. 지금 미얀마 소식이 국외로 나갈까봐 모든 인터넷 접속과 언론에 대한 통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군요. 한국 정부도 교민들을 위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국외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얀마 민주화 사태를 위해 미국, EU, 일본 등에서 경제 제제를 포함한 미얀마 정부를 향한 압력을 시도하고 있지만 미얀마 정부에 온건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 정부의 태도로 인해서 UN에서의 제재 조치가 협의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이번 포스팅을 하면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출처나 링크를 표시하지 않고 제 글인냥 올렸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면이 있었고, 어느 분의 지적으로 인해 그 행동이 잘못 된 것임을 알고 늦었지만 기사의 출처 및 링크를 표시하였습니다.
이번 지적으로 인해 앞으로 스크랩할 경우 출처를 표시하겠습니다. 늦었지만 많은 분들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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