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새로운 사극 드라마

승승장구하는 SBS 대하사극‘왕과 나’의 강력한 라이벌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오는 9월17일 첫 방송되는 MBC ‘이산’은 7일 경기도 용인에서 제작발표회를 열며 본격적인 대장정에 나선다. ‘이산’은 ‘대장금’ ‘허준’을 연출한 이병훈PD가 메가폰을 잡은 데다 이순재 견미리 등 중견 탤런트, 이서진 한지민 박은혜 성현아 등 스타급 젊은 연기자들을 내세우며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이산’은 조선시대 명군인 정조를 소재로 삼아 그의 인간적인 성장기를 그려낼 계획이다. 정조 역에는 이서진이 캐스팅됐으며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할아버지 영조 역에는 이순재가 나선다. 역사에는 실패자로 낙인찍힌 개혁군주 정조가 200여년이 지난 오늘, 과연 브라운관에서 재기할 수 있을까.
<슬라이드쇼의 사진은 imbc 홈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여러 배우들의 모습과 포스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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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포스터와 등장인물인 이서진, 조연우, 한지민, 지상렬과 오픈 세트장 조감도입니다.

왜 정조인가?
얼마 전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지만 그 어떤 드라마보다 호평을 받았던 사극이 있었다. 일부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힐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던 KBS 2TV ‘한성별곡’이 바로 그것. 이 드라마가 호평을 받은 그 중심에는 안내상이 연기한 정조가 있었다. 수많은 정적들 사이에서도 경장(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결국 정적들에게 독살을 당하는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한 정조를 사실적으로 묘사해낸 ‘한성별곡’은 명품드라마라는 명예 수식어를 얻었다.

‘한성별곡’ 속 정조는 너무나도 정치적으로 그려졌다. 제작진은 그 사실을 부인했지만 화산(수원) 천도를 감행하는, 정책 하나 하나에 반대하는 정적들과 싸움을 벌이는, “신료들이 언제 한번 나를 왕으로 생각한 적이 있소”라고 외치고 “저들(신료)이 나를 이기는 것은 그들이 옳아서가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서다”고 한탄했다.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너무나도 많았던 ‘한성별곡’은 저조한 시청률 때문인진 몰라도 적어도 학계에서는 큰 반발을 받진 않았다. 아무리 정치적 색깔이 강하게 품긴 정조였지만 ‘과거를 통해 현실을 반영한다’는 역사학의 일반명제를 너무나도 잘 포함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MBC ‘이산’이 그릴 정조는 그 위험성이 다분히 내포돼있다.

이병훈PD는 그동안 퓨전사극을 추구해왔다. 적어도 정통대하사극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은 그동안 ‘이산’측의 드라마 설명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병훈 PD가 그동안 연출해 성공을 거둔 작품들도 역사적 실체가 명확한 인물을 그렸다는 점은 ‘이산’에게 쏟아질 비판, 혹은 논란이 쉽지만은 않을 것을 예고해준다.

정조는 한국 사학계에서도 화두 중의 화두다. 중세와 근대를 잇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자 역사학계 최고 논쟁거리 중 하나인 자본주의맹아론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미래를 내다본 개혁 선진 군주’에서 ‘역사발전을 거스르고 절대 왕권을 추구한 반동적 인물’이라는 극과 극의 역사적 평가를 받는 군주다.

그만큼 학계가 거둔 정조에 대한 역사적 접근도 많았을 뿐 아니라 그 실체가 많이 밝혀진 존재이기도 하다. 사료가 적은 김처선이나 폐비윤씨를 그린 ‘왕과 나’가 그 내용을 표현하는데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반면 ‘이산’은 조금의 상상력이 곧바로 역사왜곡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이 한국 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진중한’ 인물을 단순히 재미적인 요소로만 풀이한다면 학계는 물론 대중들이 퍼부을 공격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도 쉽게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산’ 발목잡는 ‘한성별곡’ 과 ‘왕과 나’
이처럼 ‘이산’이 보여줄 역사적 기술을 넘어 방송계 현실에서도 ‘이산’은 커다란 장벽들을 넘어서야 한다. 앞에서 설명한 ‘한성별곡’이 보여준 위대함은 ‘이산’이 작품성으로 이겨내야 할 적인데다 대박드라마 수순을 밟고 있는 ‘왕과 나’의 인기는 ‘이산’이 걸어가야 할 험난함을 예고한다.

사극은 선점 효과가 그 어떤 드라마보다 중요한 장르다. 퀄리티에선 높은 점수를 받은 KBS 1TV 대하사극 ‘대조영’이 ‘연개소문’과의 경쟁에서 초반 고전을 면치못했던 현실만 뒤돌아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산’은 ‘왕과 나’의 탄탄한 인기세를 극복해야하는 단점을 안고 출발선상에 서게 됐다. 정조가 아무리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인물일지라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소용이 없을 터.

또 10월 방송 예정인 CGV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도 연기파 배우 김상중과 정애리를 앞세워 다크호스로 떠오른 만큼 ‘이산’에겐 매우 성가신 존재로 자리할 수도 있다.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에 이어 개혁을 통한 집권세력과의 목숨을 건 싸움, 독살음모론이 강하게 제기될 만큼 의문시되는 죽음은 정조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끌어낸만 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조가 이 시대에 얼마나 큰 의미를 내던졌는지, 그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지다. 과연 정조가 ‘오로지’ 재미로만 그려지며 또 한번 실패한 군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2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성공이라는 훈장을 받을지 카운트다운은 그리 멀지 않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