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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의 아내 (The Time Traveler's Wife, 2009)

Book & Movie

by 곰탱이루인 2009. 11. 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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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보고 왔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모방한 아류작은 아닐까 의심했었는데,  혹 이 영화가 그저 '시간'을 소재로 한 뻔한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미래로 걸어가는 여자와 과거로 걸어가는 남자의 애틋한 사랑을 말했다면,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남자와 그 남자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시간'이라는 소재는 분명 같을지 몰라도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전혀 다른 영화이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자의

무엇보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보며 필자는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원작이 소설이라 그런지 스토리가 꼼꼼하게, 게다가 '와, 저기까지 생각했어?' 싶을 정도로 깊이있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초반부에는 주로 과거-현재를 여행하는 주인공과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게다가 초반부터 베드씬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영화에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흡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도대체 저 남자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 시간여행을 한다는 거지? 아니 근데 왜 여행할 때 꼭 나체여야해? 등등. 초반부터 '다 보여주고' 시작하는 영화인지라 '그들이 어떻게 다 알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하나 둘 A부터 Z까지 단서를 풀어가는 기분이랄까?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것을 후반부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 영화는 "이렇게 저렇게 만나 사랑을 꽃피운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혹은 "그들은 사랑했지만 끝내 그 인연이 닿진 않았습니다"로 끝나기 일쑤인데,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다르다. 시도 때도 없이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때면 사라진다'는 시간 여행자와 결혼한 아내와의 이야기─ 연애, 그 후를 다뤘다는 점이 바로 그것. 사랑이 늘 연애처럼 해피엔딩일 수는 없지 않은가.

작별도 없이 사라졌다가 홀연히 다시 나타나는 그를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그녀. 그녀는 나름의 비전이 있고 자기 생활이 있는데 왜 무작정 내가 당신을 기다려야만 하냐며 불만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그와의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에 임신을 간절히 바라지만, 뱃속에 있는 아이는 벌써부터 '시간 여행'을 한다. 뱃속에서 '현재'에 안주하기 않고 '과거' 혹은 '미래'를 여행하며 사라져버리는 것─ 즉 유산이라는 말이다.
그래도 끝까지 그의 아이를 낳고 싶은 그녀와, 저주받은 유전자를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은 그의 첨예한 대립. 결국 '현재의 남편'이 정관수술을 하면서까지 불임을 선언하지만, 아내는 '과거에서 온 남편'과의 정사로 임신에 성공한다. 그래놓고 "그래도 바람은 아니다"하고 말하는데, 황당하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고, 뻔뻔하긴 한데 또 귀엽기까지 하니, 작가의 엉뚱한 상상이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기분 좋은 상황 연출되시겠다.


또 주목할 것은 결혼한 후 '아빠'로 살아가는 남자의 자세다. 늘 과거-현재만을 살아가던 그가 우연히 미래를 여행하게 되는데 거기서 자신의 딸을 만나게 된다. 저주받은 유전자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태어난 딸은 "전 똑똑해서 제가 원하는 시간,시대로 갈 수 있대요"라며 야무지게 아빠를 맞이하고, 자신이 5살 되던 해 아빠가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하긴, "40대에 여행 중인 당신을 만난 적은 없어"라고 불안해하던 아내와의 대화도 있었으니 얼추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예상할 수 있지만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음을 오래전부터 깨달았던 그. 겸허히 죽음을 준비하며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또 누군가의 친구로서 생을 정리하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곧 다가올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가혹한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시간 여행 중 나체로 있을 딸을 위해 강제로 문 여는 법을 알려주던 자상한(?) 모습,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서있던 창가에 묻은, 채 온기가 가시지 않은 그의 손지문, 죽은 후에도 '과거의 남편' 시간 여행을 하며 '미래의 아내'를 만나 나누던 키스. 모두 절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을 일이란 걸 알지만 또 어차피 상상으로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사랑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괜시리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은 "그래도 역시 죽어서도 다시 만날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할 것 같아"라는 로맨틱한 상상 때문은 아니었을까?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마법의 돌>처럼 완벽한 환타지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영화. 그러나 그 환타지 속에 피어나는 사랑마저 현실처럼 공감되어 연신 눈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로맨틱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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