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집에서 벗어나서 서울로 진출을 했습니다. 교회의 청년부에서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사해 사본"의 전시회를 같이 보러 갔습니다. 주말이라 낮에는 사람들로 붐빌거라고 생각해서 저녁 6시에 관람을 하기로 했습니다.(저녁 6시 이후에는 관람료 2000원이 할인되더군요. 정가는 1만 5천원입니다)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 분들도 있고 또한 제 블로그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단순히 쉽게 생각하면 "전쟁기념관"에 열리는 전시회에 다녀온 관람기 정도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4시쯤 동작역에 내려서 동작역에서 열리는 아는 동생의 사진전["네이버까페: 추억을 담는 사진관, 다음 까페: 사진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공동 주최 일시: 2월 16~17일(13:00~21:00시까지)]에 들러서 동호회원분들이 찍은 사진을 관람을 하고 삼각지역으로 이동해서 저녁을 미리 먹고서 "사해사본"을 보러 들어갔습니다. (이미지 클릭시 원본 사이즈로 볼 수 있습니다)
저야 시골 출신이고 수도권에 서식을 한지 5년이 되었지만 전쟁기념관은 처음인데 기념관 주변으로 각종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예전에 군 복무를 하면서 보고 다루던 무기들과 광개토대왕비 복제품도 있더군요.
전시관에서는 사진 촬영을 안 하는 것이 예의이고 또한 이번 전시회에서도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습니다. 입구에서 찍은 사진, 출구에서 찍은 사진만으로 만족을 하시고 시간이 되시면 봄 나들이 하실 때 한번쯤 가보셔도 될 듯합니다. "사해사본과 그리스도교의 기원"의 전시기간은 6월 4일까지이며 연중 무휴이며 개관시간은 10시~21시까지입니다. 의외로 관람을 하면서 다리가 아프니깐 어린 아이들과 함께 관람을 하실 분들은 중간 부분쯤에 있는 "무료발굴"을 하는 공간에서 쉬시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팜플렛의 앞, 뒤 이미지입니다.
사해사본이란? 탄소 측정법과 문서에 대한 분석, 글씨체에 의해 사해 문서들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대 선지자 이사야 문서는 기원전 335년에서 기원후 107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한다.
사해 사본 이외에는, 십계명이 담겨져 있는 이집트의 나쉬 파피루스 정도가 이에 비견할 만한 오래된 순서였다. 비슷하게 쓰여진 문서들이 근처, 특히 맛사다 요새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일부 문서는 파피루스에 쓰여져 있고, 많은 문서들이 갈색 동물 가죽 위에 쓰여져 있다. 탄소 계열의 재료로 만들어진 잉크로 새의 깃털 촉으로 쓰여졌다. 구리(copper) 스크롤이라 이름 붙인 문서는 종이처럼 얇은 구리 판에 기록되어 있다. 80%에서 85%의 사해 문서는 히브리어의 3개의 방언 중 하나로 쓰여졌다. 이들은 성서를 기록한 히브리어(고전 히브리어), 사해 사본 히브리어와 프로토 탄나이트 히브리어이다. 성서를 기록한 문서와 소위 DSS 히브리 문서들은 성서 히브리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DSS문서는 어떤 학자들이 쿰란에서 쓰여졌다고 믿는 문서들이다. 일부 문서는 아람어와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지기도 했다.
발견과정: 사해사본은 1947년에 한 베두인이 쿰란 지역 동굴에서 처음 발견을 하였다. 그 사실을 안 E.L. 수케닉(E. L. Sukenik)고고학자는 사해사본을 베두인에게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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