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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유래를 아시나요?

혼자만의 잡담

by 곰탱이루인 2007. 10. 1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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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다이너마이트 발명자 알프레드 노벨 유언장이 스톡홀름에 있는 한 은행에서 공개됐을 때 가족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대의 거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은 이런 글귀로 시작합니다. "원금을 내 집행인들에게 맡겨 안전한 곳에 투자해 기금을 조성하게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는 지난해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을 선정해 상을 주는 형태로 매년 지급하도록 한다."

전 세계에 90여 개 폭약ㆍ탄약 제조공장을 운영했던 노벨은 거대 재벌이었습니다. 노벨은 워낙 입이 무거웠기 때문에 재산 기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에 아무도 노벨상과 같은 그런 방법으로 기부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을 겁니다. 살상무기로 엄청난 부를 쌓은 노벨이 인류사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을 만든 것 자체가 뉴스거리였습니다.

엄청남 전범이 만든 노벨상
알프레드 노벨이 엄청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알다시피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무기 개발로 재산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국가간의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나, 식민지를 지배하던 제국주의 국가에서 사용되어서 많은 인명을 해친 수단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노벨이 죽으면서 남긴 유언으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은 논란과 놀라움 속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벨상 100년은 영광의 시간임과 동시에 수많은 뒷소문을 남긴 스캔들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노벨의 이런 행동에는 그의 형인 루드비히 노벨이 죽으면서 자신의 발명품이 무기로 사용되면서 많은 인명을 해친 것을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노벨상은 1901년부터 수여하였다. 초기에 제정된 노벨상은 5개였는데 그 중 한개인 노벨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여되며, 나머지 상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됩니다. 나중에 제정된 경제학상은 1969년부터 스웨덴은행에 의해 제정되었습니다. (아래는 노벨상을 결정하는 기관과 대상입니다)
노벨평화상- 노르웨이 국회의 추천으로 구성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수여합니다. 국가간의 우의나,
                 현존하는 군대의 폐지와 축소, 그리고 평화 의회의 유지나 증진에 가장 최선의 일을 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합니다.
노벨생리학& 의학상- 스웨던의 카롤린 의학연구소에서 결정하여 수여합니다. 생리학이나 의학 분야에서
                                가장 큰 발견과 발명을 한 사람에게 수여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 기념 스웨던 은행 경제학상"입니다.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수여합니다.
노벨문학상-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수여합니다.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 수여합니다.
노벨물리학상- 스웨덴왕립 고등과학원에서 수여합니다. 그 전 해에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큰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이후 그 전 해 발명자라는 수여조건이 약해집니다)
노벨화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과학원에서 수여합니다. 그 전 해 화학 분야에서 가장 큰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후 그 전 해 발명자라는 수여조건이 약해집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노르웨이에서 수여하게 한 이유는 분명치않습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이웃에서 경쟁과 협조를 해온 미묘한 관계입니다. 아마도 두 나라의 우정을 증진시키고자는 하는 노벨의 의미가 아닌가 짐작됩니다.그리고 알다시피 노벨상은 아무리 위대한 발명이나 작품을 쓴 사람이더라도 사후(死後)에는 수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벨상은 평생 한번 받기도 힘든데 두번이나 받은 사람도 있고 가족이 노벨상을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알다시피 여류 과학자인 마리 퀴리(폴란드 출신 과학자)는 "방사선의 연구"로 1903년에 물리학상을 받았고 1911년에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으로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마리 퀴리의 남편도 마리 퀴리와 같이 1903년에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고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졸리오 퀴리 부부(사위는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는 1935년 노벨 화학상을 부부가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즉 부모님이 3번(2번은 공동 수상, 1번은 어머니인 마리 퀴리 수상) 딸과 사위의 공동 수상으로 인해 마리 퀴리의 가족은 노벨상 가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노벨상 제정 후의 논란
아시아에서는 주로 일본과 중국, 인도에서 노벨 문학상 위주로 수상하다가 최근 들어 한국에서는 최초로 김대중 전대통령이 수상하였습니다. 일부에서는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김 전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주는 노르웨이 측에 로비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노벨상을 수여하는 각 기관에서는 몇 개월 전에 추천을 받아서 후보를 내정한 다음에 수여하고 있습니다. 일개 정부의 로비로 인해서 그런 국제적인 상을 줄 수는 없습니다.(이 부분은 노벨 평화상 수여 위원회 위원장이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알다시피 노벨상이 수립된 후  몇 십년동안은 노벨상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노벨상 수립 100년이 되었지만 초기의 몇 십년동안은 유럽 국가나 백인들에게만 수여가 되었으며 인도의 "간디"와 같은 경우에는 영국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평화상 수상을 못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4년 장 폴 사르트르에게 노벨 문학상이 수여가 되었으나 사르트르는 최초로 노벨상을 자의로 수상을 거부한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벨상이 제정된 후 노벨재단이 스스로 노벨상의 수여 조건을 바꿔서 노벨상의 성격을 바꾼 적도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수상인 처칠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할려고 하였으나 노르웨이 측에서 거부할 움직임이 보이자 결국 수여된 것이 "노벨 문학상"이었습니다.

2차 대전동안 수상직을 수행하면서 겪은 것을 쓴  회고록이 역사적 가치는 있지만 문학적인 의미는 없다는 평론가들의 논평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차 대전에 벌어진 독가스전(암모니아 가스 발견으로)에 도움이 된 독일 과학자에게 화학상을 수여한 것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남의 학문적 업적을 가로채 상을 수상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DNA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왓슨과 크릭, 물리학상을 수상한 에리리오 세그레가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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