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시민"-법과 정의에 대한 영화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주중에 "모범시민"을 보러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사실은 다친 이후로 방안에서만 지낸지라 바깥바람 쐴 겸 오랜만에 영화보러 간 거였죠. 혼자 움직이는 게 불편해서 아는 동생을 보호자겸 같이 보러 갔습니다. 사실 예고편으로 본 "모범시민"은 치열한 법정다툼을 보여주는 법정영화인 줄 알았는데 실상 그게 아니더라구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어느 두 명의 범죄자에게 무참히 살해되고 가족을 잃은 남편은 법에 정의를 호소했지만 오히려 법은 그를 외면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난 후 정의를 잃어버린 남자가 법에 도전하여 "정의"란 무엇인지 되묻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사실 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최근에 "법"에 대한 신뢰성이 의문을 갖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국내에서도 이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곰곰히 생각케 하고 있습니다.

"모범시민"은 두 가지 방향에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하나는 검찰(혹은 경찰)이라는 사법관의 사익 앞에 "선"을 외면한 "법"과 "정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주제의식을 강조합니다. 나머지 하나는 범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복수가 마치 "쏘우"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도시를 분노의 두뇌 게임의 무대로 삼는것이죠.

그러나 "모범시민"은 주제의식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장르적 매력의 치밀성은 부족합니다. 검사의 사익 앞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살기어린 눈빛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사라집니다. 교도소에 갇혀버린 주인공과 검사의 두뇌 게임은 갈수록 논리적인 납득보다는 억지성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두 사람간의 심리적 공방이 무의미해지면서 두 사람간의 대결이 흐지부지되고 나중엔 심리대결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극적 긴장감은 사라져버립니다.

거기에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연을 관객이 동감하게 만드는 감성의 자극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감성이 전달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과연 주인공의 복수에 대한 관객들의 응원, 흑은 공감케 만드는 부분이 약했습니다. 자신의 행복한 가정을 빼앗은 범죄자와 사법기간의 타협으로 인해서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복수의 칼을 갈았으면서 영화는 주인공을 분노의 아버지, 남편으로 만들기보다는 그저 머리 좋은 사이코 범죄자, 혹은 스파이 출신의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실패한 영화라고 지적할 순 없습니다. 모든 걸 잃은 남자가 정의롭다는 법에 호소했지만, 그 법은 자신을 외면했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범죄자에게 살해당해서 그 복수심으로 자신도 역시 누군가의 가족인 범죄자를 살해하게 됩니다. 가족을 잃은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그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공감되지 않는 주인공의 선택이었습니다. 누가 그랬듯이 만들어진지 오래된 법으로 범죄자를 판단할려고 하지만 이미 그 법은 빠져나갈 구멍이 상당해서 돈 없고 바보인 범죄자들만 법의 그물에 갇혀서 죄값을 치른다고 하더군요.

이 영화의 오락적 재미는 둘째치고 "모범시민"이 던져주는 주제는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줍니다. "법은 선인들의 편이며, 죄를 저지른 악인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세상의 진리가 우습게 여겨지는 요즘 세상에서 과연 바보 같은 법을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선한 시민들의 편이 되어야 할 법이 요즘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법에 대해 다시 생각케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