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사과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내가 한 잘못을 시인하고 그래서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이 점점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일부러 나는 가급적이면 사과할 일은 꼭 사과하고 넘어가려고 애쓴다. 그렇게라도 애쓰지 않으면 영영 사과하는 방법을 잃어버릴거 같아서.. 사과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사과를 하고 나면 미안하고 찜찜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걸 보면 '사과'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하기 힘든 사과. 그것을 대행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하는 사과가 진정한 사과인가는 차치하고 일단은 어려운일을 남에게 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가벼워지는것만 같다. 이 책 <사과는 잘해요>에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남의 사과를 대신해주는 일을 최고로 잘하는 두 명의 남자, 시봉과 진만. 어떨때는 너무 심오하다 싶을 정도로 사과를 잘하는 그들의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되면 '건강해 지는 약'을 주는 시설에서 시봉과 진만은 만났다. 그곳에서 시봉과 진만은 매일매일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해 복지사들에게 사과를 해야했고 그 후엔 폭력에 시달렸다. 그들은 어느날 복지사들에 의해 반장이라는 직함을 얻게 되고 시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사과까지 대신하게 된다. 그들의 몫까지 맞아야 하는건 당연한 일. 하지만 그들은 사명감을 갖고 복지사들에게 열심히 사과한다. 웃으면서... 승합차에 실려 시설에 들어온 남자가 자신은 미치지 않았으니 구해달라는 쪽지를 담넘어로 던지는것을 돕기위해 시봉과 진만도 열심히 쪽지를 남겼고 어느날 경찰과 방송기자들이 시설에 들이닥친다. 원장과 복지사들은 구속되고 갈 곳이 없어진 그들은 시봉의 집으로 가고 진만은 자신의 집을 기억하지 못해 그곳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시봉의 집에는 시봉의 여동생 시연과 뿔테안경을 쓴 남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시연이 몸을 팔아 번 돈을 경마로 날리고 만날 돈 달라고 시연에게 조르는 그런 남자였다. 진만과 시봉은 자신들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런 저런 공장에 찾아가보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우연히 진만과 시봉이 동네 가게 주인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본 뿔테남자의 제안으로 그들의 '대신 사과하기' 직업이 탄생한다. 뿔테남자가 데려온 의뢰인의 사과를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뜻밖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자신이 버린 전처와 아이에게 대신 사과하기를 바랬던 의뢰인, 의뢰인의 사과를 '죽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고 말하던 의뢰인의 전처. 진만과 시봉은 어떻게 사과를 할 수 있을까. 재미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던 작가 이기호의 작품을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인것도 같지만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없는 진지함이 묻어나서 첫만남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그의 전작들도 많은 호평을 받는걸 보니 내 취향에 맞을것 같아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봉과 진만처럼 순진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것 같아 벌써 기대가 된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