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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함께 한 김수환 추기경

혼자만의 잡담

by 곰탱이루인 2009. 2. 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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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선종한 국내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님은 단순히 한 종교의 지도자를 넘어서서 온 국민이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학병으로 끌려간 적도 있던 그 분의 삶은 70~80년대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뜨거운 열망을 짓누르는 정권에 맞선 분입니다. 가난한 시골 출신의 소년이 어머님의 희망에 따라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부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분은 종교적인 삶 뿐만 아니라 시대의 아픔까지 보듬어 준 삶을 살았다고 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하던 시기는 2년 동안의 본당 신부시절이라고 합니다. 안동, 김천의 본당에서 지냈던 시기의 신자들에 따르면 당시 소금장수처럼 시커먼 얼굴로 인해서 소금장수라는 별명을 지녔답니다. 또한 학교장으로 근무하던 때는 어린 학생들과 장난치며 논다고 수녀님에게 따끔하게 혼나면서도 학생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에피소드가 있더군요. 50여년간의 성직자 생활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그 시절이 아닐까하고 말씀한 인터뷰 내용이 있더군요.

이미지출처: 연합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논의에 따라 교회(성당)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남겼다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그 분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탄압하는 정권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몰려든 학생, 시민들의 가장 앞에 서서 맞선 분입니다. 당시 해고노동자, 철거민, 대학생 시위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이 바로 명동성당이었습니다. 당시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명동성당을 성지처럼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느 진보좌파가 김수환 추기경을 비난하였지만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추기경님의 노고를 모른다면 그건 어불성설이겠죠.

삶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까지 추기경님이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이었습니다. 성직자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정치인, 고위 관료, 재벌들이 추기경을 찾아뵙기 원했지만 오히려 추기경님은 그런 분들보다는 사회 약자들을 더 찾아갔습니다. 특히나 사회에서 소외계층인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국 현대사와 함께 살아온 추기경님의 삶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였기에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존경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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